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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의 이야기

맥주가 필요한 밤

머릿 속의 생각이 엉키고 설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억지로 누워있기 보다 머릿 속의 생각을 나름 대로 정리하고 눕는게.. 되려 잠이 빨리 들때가 있지요. 어제 밤이 바로 이런 날이였습니다. 아무리 자려해도 머리가 복잡해 잠은 오지 않고, 신경을 너무 쓴 탓인지 편두통이 올 것만 같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는 과감히 바람도 좀 쐐고 한결 기분이 나아지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생각난게 얼마 전 집 앞에 생긴 작은 펍이였습니다. 매 번 지나갈 때마다 언젠간 한 번 들려야지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자 싶어서 도톰한 패딩과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 운동할 때 신던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것 처럼 가까운 거리여서 부담 없이 향했고, 손님도 많지 않아 조용히 맥주를 먹으며 사색하기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래도 일단 야식만큼 달콤한 것은 없기에 새우와 브로콜리, 방울 토마토를 넣고 올리브유에 볶은.. 이름이 기억 안나는 음식하나와 맥주를 시켰습니다. 역시 맥주는 너무 복잡하게 꼬인 생각의 결들을 보다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고 맛있는 음식은 현재의 고민을 망각하게 해줄만큼 제 관심을 뺏었습니다.

 

한 1시간 반 가량을 맥주도 먹고 함께 나온 음식도 먹으며 머릿 속을 복잡하게 하던 인생의 불안감과 막연히 관념적이였던 생각들을 조금씩 해결해나갔습니다. 인생의 불안이야 사라질만하면 떠오르고, 또 너무 안정된 상태에서도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녀석이니.. 그간의 노하우로 쉽게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서 또 나타날 것이지만 당분간은 최소한 행복할 것 같네요.

 

그리고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갈피를 못잡던 다양한 방면의 고민들은.. 저의 강박증적인 고민 장애로 인한 것임을.. 맥주를 먹고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머릿 속 생각을 천천히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죄다 실천이 결여된 관념적인 생각 밖에 없었죠.

 

관념적이였던 생각은 인생의 전부인냥 머릿 속을 가득채웠지면 결과적으로는 실천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였고, 앉아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그제서야 이 고민들이 관념적인 고민이였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시야가 좁아지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또 마음의 여유 문제네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시야가 좁아지고, 시야가 좁아지면 생각이 협소해지고, 생각이 협소해지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 또 여유가 사라지는.. 악순환의 사이클로 빠질 수 밖에 없는데.. 최대한 이런 사실을 잊지 않도록 자각하고 또 인식하고 있어야 겠네요.

 

평소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맥주는 종종 마십니다. 맥주 한 두 잔을 먹으면 그렇게 취하지도 않고,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론 낯선 곳에서 맥주 한 잔이 마치 여행을 온듯한 기분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그래도 약간의 바램이 있다면.. 맥주가 필요한 밤이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맥주를 찾게 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