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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의 감성공간

좋은시 추천 5편.

[좋은시 추천 5편.]

 

시를 읽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제 감성도 가을에 반응하는지 요즘 따라 시를 읽는 시간이 늘어가네요.

시의 매력은 단편성과 흡입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길고 긴 소설의 경우 1000페이지가 넘는 것도 많은데

시는 길어야 3쪽이며 그 안에서는 슬픔과 기쁨등 다양한 요소들이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잔잔한 시라고 할 지라도 그 속에서는 강력하게 꿈틀거리는 강한 감성이 있고 그것이 내 마음에

다달았을 때는 시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기분을 많이 느끼곤 합니다.

 

아무튼 시를 읽는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최근 제 머리를 강타한 좋은시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최근 봤던 시들 중 괜찮다고 싶은 시들을 골라 좋은시 추천을 드려볼까 합니다.

 

 

 

 

쨍한 사랑 노래 (황동규)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시인은 고통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더 절절하게 시인의 고통이

전달되는 듯 합니다. 시인은 게 발처럼 마음을 뚝뚝 끊어비리고, 마음을 차라리 없애고 싶다 합니다.

마음이 있기에 생기는 고통, 그렇기에 아예 없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그의 상처가 느껴집니다.

 

 

 

 

눈물 (작자 미상)

 

만일 내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면

눈물로 돌아오리라.

너의 가슴에서 잉태되고

너의 눈에서 태어나

너의 뺨에서 살고

너의 입술에서 죽고 싶다.

눈물처럼. 

@이번 좋은시 추천은 작자 미상인 시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하고 시 자체만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전 이 시를 보자마자 노트에 필사를 했습니다. 시가 짧아서 필사했던 것도

있지만 계속해서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웃음도 아니고 눈물일까,

왜 기쁨이 아니고 슬픔일까, 슬픔의 눈물이 아니면 기쁨의 눈물일까..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곱씹었던 시입니다.

이 시는 그 의미도 좋지만 표현의 아름다움만 보더라도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듯합니다. 

 

 

 

 

세상을 정복하더라도 (고대 산스크리트 시인)

 

내가 세상을 다 정복하더라도

나를 위한 도시는 오직 하나뿐.

그 도시에 나를 위한 한 채의 집이 있다.

그리고 그 집안에 나를 위한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에 침대가 있고,

그 곳에 한 여인이 잠들어 있다.

내가 있을 곳은 오직 그곳뿐. 

@이 좋은시를 보면서 인간의 유한성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유럽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알렉산더왕도 결국 자신이 먹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자신이 누워자는 것도 방 한칸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엇을 그리 더 못가져서 안달인지 그렇게 가진다고해서 다 누릴 수나 있는 것인지

타인과 함께 누리고 살아도 될텐데 왜 꼭 뺏는 것인지 여러모로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스스로에게도 탐욕을 조심하라는 메세지 같기도 하네요.

 

 

 

 

 

 

사랑의 찬가 (네르발)

 

여기 우리는

얼마나 찬란한 날을 보내고 있는가!

일렁이는 물결의 흔적처럼

권태는 슬픔으로 사라진다.

욕망 밖에 없는 미친듯한 정열에

취하는 시간이여!

쾌락 뒤에는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시간이여! 

@시인은 주체 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채 이 시를 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좋은시로 추천을 드리고 있지요. 시인은 알고 있습니다. 쾌락이 남기고 간 자리에는 허무밖에 없다는 걸,

그러나 인생이나 세계는 언제나 보잘 것 없는 것들의 연속입니다. 그렇기에 사랑과 쾌락은 허무한 시간을

남기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한 것이 아닌가 싶으며,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하고

쾌락을 추구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유령 (보들레르)

 

갈색 눈의 천사처럼

나 그대의 침실로 찾아가

밤의 어둠과 함께 조용히

그대에게로 숨어들리.

 

그리하여 나 그대에게, 갈색의 여인이여!

달빛처럼 차가운 입맞춤과

구덩이 주위를 기어다니는 뱀의

애무를 해주리.

 

그리고 창백한 아침이 오면

그대, 밤까지 싸늘할

나의 빈 자리를 보리.

 

그대의 생명과 젊음에

남들은 애정으로 대하여도

나는 공포로 군림하리. 

@이 시를 끝으로 좋은시 추천이 끝났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은 조금 강렬한 시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보들레르라는 시인은 현대시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문학가입니다. 보들레르는 마취제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수성을 강화시키고 반대로 건강을 해치는등 굉장히 격렬하게 문학을 했고 또한 예술도 즐겼습니다.

이런 특성이 그의 시에도 잘 나타나며 유령 또한 그의 시중에 덜 거친 편이지만 그런 색깔이 묻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