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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의 감성공간

햇살에게 - 정호승


요즘 시를 읽는데 관성이 붙었나 봅니다. 최근 시집을 하나 둘 구매하며, 꾸준하게 시를 보고 있는데,
봐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시를 읽고 싶기에 읽게 되는 순수 의지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시집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머리에 남는 시는 2-3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 좋다.."라고 생각되는 시는 제법 있는데, 머리에 남을 만큼 강렬한 시들은 몇 편되지 않지요.

그런 시들을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면 신기합니다. 거친 문장도 그렇다고 화려한 문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계속 생각나는 무언가가 있지요. 제가 이웃님들에게 소개드리고 싶은 '햇살에게'란
시 또한 계속해서 생각나는 그런 시입니다.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시.. 문학 작품.. 미술 등 모든 예술들이 그렇듯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읽혀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햇살에게라는 시를 보며, 이별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뜬금 없지만 이 시에서 이별이 읽어졌던 것은 이별 후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먼지가 된 것 같은
초라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였지요. 이별 후에도 해는 뜨며, 햇살은 자신을 비춥니다. 그 때 인간에 부재로
인한 시려움을, 체온과도 같은 햇살로 자신을 감싸줍니다.

이별 후에 찬란했던 햇살이 이 시 속에 스스로를 투영시킬 수 있게 하네요.


또 인간 존재에 대한 겸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인간은 태양이 비추는 햇살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 생명의 에너지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대한 겸손함을 느낍니다..

또 세계관을 우주로 확장했을 때 인간은 먼지 만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성찰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네요. 우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넓으니 말이죠.

이 시는 짧다면 짧은 시인데도 불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이 시가 생생하게 생각나지 않나 싶네요.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싶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