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자의 감성공간

절절하게 슬픈 시

[절절하게 슬픈 시]

 

날씨가 점점 추워지다 보니 마음까지 함께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조금 더 뜨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할텐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슬픈 시를 찾아서 봅니다.

 

시의 매력은 짧고 강렬하다는 점과 갖은 은유로 쌓여져 있으면서 그 은유가 머릿 속에서 벗겨질 때

더 깊은 감동을 준다는 점이 있습니다.

 

아마 시를 자주 읽으시는 분이라면 제 말에 동의를 하실텐데.. 오늘은 저처럼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고

시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슬픈 시 4편 정도를 소개드릴까 합니다.

 

 

 

 

 

이별 (윌리엄 스탠리 머윈)

 

당신의 부재가 나를 관통하였다.

마치 바늘을 관통한 실처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실 색깔로 꿰매어진다.  

@이별을 처음 겪었을 때 느낌을 조금 표현해보자면 나무에다가 둘레가 아주 큰 못을 박은 뒤 그것을 다시

빼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이렇게 못을 막았다가 빼내면 나무에는 박힌 자리만큼 구멍이 덩그러니

뚫려져 있습니다. 제 이별의 첫 경험은 그런 아픔이였습니다. 공허해서 시릴 정도이죠.

 

이 시인의 아픔은 공허가 아니라 관통이였나 봅니다. 표현은 다른데 공감이 되는건 저 또한 아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이별 직후의 세상은 아픈 사람들의 아픈척하지 않는 사회처럼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런 시를 쓴 걸 보니 누구를 그 무렵 사랑했었나 보다 (류시화)

 

꽃눈 틔워 겨울의 종지부를 찍는 산수유 아래서

애인아, 슬픔을 겨우 끝맺자

비탈밭 이랑마다 새겨진 우리 부주의한 발자국을 덮자

아이 낳을 수 없어 모란을 낳던

고독한 사랑 마침표를 찍자

잠깐 봄을 폐쇄시키자

이 생에 있으면서도 전생에 있는 것 같았던

지난 겨울에 대해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가끔 눈 녹아 길이 질었다는 것 외에는

젖은 흙에 거듭 발이 미끄러졌다는 것 외에는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나는 너에게 꽃을 준다, 삶이여

나의 상처는 돌이지만 너의 상처는 꽃이기를, 사랑이여

삶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잘 가라, 곁방살이하던 애인아

종이 가면을 쓰고 울던 사랑아

그리움이 다할 때까지 살지는 말자

그리움이 끝날 때까지 만나지는 말자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한다

우리 나머지 생을 일단 접자

나중에 다시 펴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벼랑에서 혼자 피었다

혼자 지는 꽃이다

@이 슬픈 시는 삶의 일회성, 자기 자신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관해 시인의 언어로

무척이나 아름답게 쓴 시라 생각됩니다. 모든 아름다움이 기쁨일 수는 없듯 이 시의 아름다움은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삶은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이라는 부분에서

시간의 덧 없음과 현재의 소중함, 견뎌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너의 이름을 부르면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에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부를 수록

너는 멀리 있고

내 울음은 깊어만 간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인이 느꼈던 감정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것은 좋은 시라

생각됩니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슬픈 시는 저에게 너무 좋은 시이며 시인이 절절하게 느꼈던 아픔을

저도 이 시를 읽는 내내 느끼곤 합니다.

 

물론 100%의 공감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 감정이 어렴풋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저는 시를 읽는 의미로는

충분하다 생각되네요. 마지막 연을 곱씹으며 읽고 있다보면 과연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났을까

궁금해지고 나 또한 어떤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날까 되돌아 보게 되네요.

 

 

 

 

 

사랑은 (채호기)

 

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 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할 말 없는 수초가 말

잃은 채 뒤엉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가라 앉아도 가라앉아도

사랑은 바닥이 없다.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말하려고 입 벌리면

더러운 못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날아가며 남겨둔 여린

가지가 자지러지며 출렁이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꽃들은 예쁘게 피어났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이미 범람해버린 강물이

지루하게 제 수위를 회복해가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사랑이 어루만진 부위에

홍수가 휩쓸고 간 잔해가 남았다.

 

 

3

 

사랑은 그렇게 왔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기포가 떠오르고

말할 수가 없다.

@과거 있었던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이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입니다. 그 때문인지 더욱 감정적으로

시를 마주하게 되네요. 우리는 마음의 문을 잠그고 모든 세상을 풍경으로 보지 않는한 누군가를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또 사랑한 누군가가 떠나간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반복들은 계속 지속되는데, 시인은 이런

반복들을.. 그리고 반복 사이에 있는 감정들을 시인만의 언어로 담백하면서 진솔하게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