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자의 해외축구

럭비의 기원.

 

 

국내에서는 낯선 스포츠임에 틀림 없지만 세계적으로보면 축구만큼이나 인기있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그 스포츠는 바로 럭비이며, 우리나라 말로는 미식 축구라고도 불리는 스포츠입니다.

 

럭비가 얼마나 인기가 있냐하면 수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럭비 월드컵의 경우 평균 시청자 수가

20~30억명에 달하며 2003년 대회 결승전의 경우 전 세계 250여개국 중 205개국에 방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월드컵만큼이나 영향력있는 스포츠 대회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럭비에 대해서 처음 접했던 것이 <아이쉴드21>이라는 일본 고교 럭비부를 소재로한 애니메이션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애니메이션을 잘만든 덕분도 있겠지만 럭비의 게임 규칙이라던지

테크닉 같은 것들이 애니메이션 도중에 잘 설명되어서 쉽게 럭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 안에서의

럭비 경기에 꽤나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심이 럭비라는 스포츠 자체에까지 미쳐 럭비 불모지라할 수 있는 국내에서 럭비에 대해 파헤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게 되기도 하였는데, 오늘은 럭비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 중 그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럭비의 기원.

 

 

럭비의 경우 축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 축구나 럭비 둘 다 풋볼이라는 공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 초기 스포츠의 형태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즉, 축구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풋볼에 대한 경기 규칙과 스포츠에 대한 견해 차이로 럭비와 축구로

갈리게 되었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경기의 형태가 발전한 것이죠.

 

공식적으로 럭비의 시작은 1871년 럭비 풋볼 유니언 결성 시기로 봅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원은

1823년 럭비 학교의 학생이였던 웹 엘리스란 사람이 당시 풋볼 규칙을 무시한채 공을 안고 달렸던 것이

럭비의 진정한 기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럭비와 축구가 가장 갈리는 부분이 손을 쓰느냐 발을 쓰느냐는 부분인데 1823년의 럭비 학교

한 학생이 가장 뚜렷한 특징인 부분을 만들어 냈지요.

 

그 이후에 럭비는 학교와 일정 지역에서 성행을 했고 럭비에 대한 명확한 규칙과 기관 차원에서의

관리 필요성을 느껴 1871년 럭비 풋볼 유니언이 결성되게 된 것입니다.

 

 

 

럭비 풋볼 유니언 결성 이후 럭비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선수가 노동 계층의 사람들이여서,

당시 경기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럭비 풋볼 유니언은 여러차례 고초를 겪은 뒤 해체,

1895년 북부 유니언이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럭비의 규정이 빠르게 개선되고,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럭비의 흥행 요소와 장치들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북부 유니언으로 기반으로 1922년 럭비 풋볼 리그가 등장하였고, 럭비가 독자적인 스포츠로

인정 받으면서 본격 럭비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딱 이정도까지만 아셔도 럭비의 유래나 역사에 관해서는 일정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바로 포스팅을 마치면 아쉬울 수도 있으니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는 럭비 월드컵에 관해서

살짝만 알려드린 후 마무리 짓도록 할게요^^

 

 

 

★럭비월드컵★

럭비 월드컵은 1987년 처음 개최를 하였으며 축구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4년 주기로 한 번씩 열립니다.

럭비 월드컵의 경우 럭비 학교에서 최초로 공을 가지고 뛰었던 웹 엘리스를 기리기 위한 대회이며,

우승팀 또한 윌리엄 웹 엘리스 컵이 주어집니다.

 

현재까지는 총 7회에 걸쳐 대회가 진행되었고 1987년 1회 월드컵 시청자가 3억명, 2회에는 17억 명,

3회에는 26억명으로 늘어나는 등 TV보급과 함께 빠르게 대회의 규모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현재 럭비 월드컵의 경우 뉴질랜드와 호주, 남아공이 각 2차례씩 우승을 차지하였고,

영국이 1차례 우승을 하면서 특정 국가들이 강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