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자의 감성공간

슬픈 시 3편.

마음이 적적할 때, 슬픈 시는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는 것은 마조히스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통해 내 마음도 위로 받기 때문이죠.

'나만 겪는 아픔'이라는 착각에서도 벗어나게 해주며,
시인의 섬세한 감성은 나보다 더욱 여릿하다는 걸 느끼게 해줍니다.

슬픈 시를 보다보면 감성이 커지는 걸 느끼며,
타인 감정에 대해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슬픈 시 3편을 준비해봤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 죽거든 (로제티)

사랑하는 그대여, 나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셔요.
그리고 내 머리맡에 장미를 심지 마시고
그늘 짓는 삼나무도 심지 마셔요.
내 몸을 덮을 풀이 비와 이슬에 젖어
무성하게 자라게만 해 주셔요.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나를 기억해주시고
또 잊어버리고 싶으시면 잊어주셔요.

나는 그늘을 볼 수 없을 거예요.
비가 내리는 것도 모를 거예요.
두견새 구슬프게 우는 것도
나는 들을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해가 뜨지도 지지 않는
어둠 속에 누워 꿈꾸면서
나는 당신을 그리워할 거예요.
아니, 어쩌면 잊을지도 모를 거예요.

@죽음 이후는 아무 것도 느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날카로운 통찰..
그 위에 쓰여진 사랑에 대한 슬픈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울적하게 만듭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말라고..
당신도 살아야 하니, 나를 잊으려면 잊어도 된다고.. 얼마나 사랑하면 그를 위해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한 잎의 여자(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 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 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는 딱 두 구절에서 제 마음에 비수를 꽂은 슬픈 시 입니다.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시 속의 주인공의 마음 속에 한 여자를 묻었나 봅니다.
평생토록 그리워 할.. 그러나 그리움은 밖에는 더 이상 할게 없는.. 그런 여자..





첫사랑(괴테)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날
그 첫사랑의 날을.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시절의
그 사랑스러운 때를.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키우며
끊임 없이 되살아나는 슬픔에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하고 있으니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나날
첫사랑 그 즐거운 때를.
@괴테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시는 잘 읽히지 않으면, 제 탓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성의 그릇이 작아 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 이유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괴테가 가지고 있는 감성의 폭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괴테의 첫사랑은 너무나 공감가는 슬픈 시 입니다.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게 두려워
끊임 없이 상처를 들추어 내고, 끊임 없이 슬픔을 느끼곤 하죠..




시 3편이 사람을 참 감성적으로 만드는 듯 합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지만, 제가 생각하기로 더욱 강력한 건 마음을 흔드는
감성이 아닐까요..? 아무리 자신을 이성적 존재라 생각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우리가 타인을 공감하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되려면
경제학, 실용서적 보다 우리의 손에 시집이 들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오늘 소개드린 슬픈 시 3편이 마음에 드셔서,
하루 종일 머리에서 맴도는 그런 감성 충만한 날이 되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