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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의 감성공간

짧고 좋은 시 모음

짧고 좋은 시 모음.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차가웠던 마음도 간지러운 것을 보니 서서히 녹으려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감성이 필요한 시간인 것 같네요^^ 그래서 요즘 시집을 들고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짧고 좋은 시들이 눈에 많이 보입니다.

 

좋은 시들은 함께 나눌 때 그 기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짧고 좋은 시를 추천 받을 때면 선물 받는다고 느껴지는데.. 오늘은 제가 한 번 선물을 주는 그런 시간이 되고 싶네요^^

 

 

 

 

그는 -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감정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애잔하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분명 어떤 촉매가 옛 향수를 자극한 경우가 많을텐데.. 정호승 시인의 '그는'이라는 시가 저에게는 원인 불명의 감정 촉매 같은 시입니다. 이 좋은 시를 볼 때면 마음 한 켠에 뭉클해지고 얼굴 없는 누군가가 생각날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일 수도 있겠네요.

 

 

 

 

가던 길 멈춰 서서 -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이 짧고 좋은 시를 보니 예전 횡단보도 앞에서서 문득 하늘을 바라본 적이 생각납니다. 그때 하늘은 너무 높고도 맑아서 행복했었죠. 하늘을 보며 "내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마저 없이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때 하늘은 하던 일을 모두 미루고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들 다 바쁘게 살기 때문에 나도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어쩌면 이런 강박이 삶을 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드네요.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 - 데인 셔우드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에게 살아 있을 이유를 준다.

악어 입을 두 손으로 벌려 본다.

2인용 자전거를 탄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목욕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누군가의 발을 씻어 준다.

달빛 비치는 들판에서 벌거 벗고 누워 있는다.

소가 송아지를 낳는 장면을 구경한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사람에게 열 장의 엽서를 보낸다.

다른 사람이 이기게 해준다.

아무 날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친구에게 꽃을 보낸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다.

@죽기 전 해보아야 할 것들에 대해 적어 놓는 것을 버킷리스트라 합니다. 이 시인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시를 통해 얘기하고 있네요. 어쩌면 짧고 쉽고 간단한 것들을 적어 놓은 것 같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나 자신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적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쉽고 작은 바람도 이런 저런 핑계를 통해 미루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요..?

 

 

 

 

 

순수를 꿈꾸며 - 윌리엄 블레이크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어린 시절 넘쳐나는 상상력으로 인해 놀이터 모래는 하나의 성과 수로가 되었고 나무는 올라타야 할 정복의 대상이였습니다. 이 짧고 좋은 시는 꽃에서 천국을 보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순수에 관해 얘기하는 듯 합니다.

 

 

 

 

 

 

모든 것 - 성 요한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아직 맛보지 않은 어떤 것을 찾으려면 자신이 알지 못한 곳으로 가야 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게로 가려면 모든 것을 떠나 모든 것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이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자는게 제 인생의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짧고 좋은 시는 저에게 있어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만약 제가 단 맛에만 집착을 한다면 다른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철학에만 목맨다면 또 다른 철학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고요. 다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최대한 열정적으로 즐겨야 하지 않나는 것도 제 생각입니다. 즐기는 것과 방랑하는 것 그 사이의 균형 감각이 제게 들어왔으면 좋겠네요.